<된장국과 양념갈비>
“무슨 놈의 여편네가 오늘도 또 된장국이야” 성질이 나서 나오는 그 말을 밥상머리라 얼른 삼켰다.
된장은 자그마한 뚝배기로 자글자글, 진하고도 빡빡하며 짭짜름하게 풋고추, 애호박, 감자 등 몇몇 채소와 멸치를 함께 넣어 끓여야 제 맛이다.
그리고 한 두 끼 만 먹고 며칠은 꼭 건너뛰어야 안 물린다.
오늘 아침 밥상 위에 또 올라온 그 지긋지긋한 된장국.
처음 큰 냄비에 희멀겋게 끓여, 국도 아니고 찌개도 아닌 것이 며칠째 올라오다보니 이젠 쫄아져 소태맛이다.
본래 남자들 입맛은 잔챙이입이라 주둥이가 짧은데 아침, 점심, 저녁.
연속으로 된장국이 밥상 한 가운데 올라앉아 터줏대감 노릇을 하니,
이젠 지겹다.
“여보, 확실히 한국 사람은 된장찌개를 많이 먹어야 장수하는 가봐” 하고
며칠 전 오랜만에 끓여준 된장국을 앞에 놓고 아내한테 위로 겸, 아부 겸 칭찬을 한 것에 대한 결과가 이 모양이다.
하지만
귀신보다 더 귀신같은 아내가 어찌 내 눈치를 모르랴.
“한국 사람은 된장을 많이 먹어야 된다며?” 하는 아내의 눈초리가 45도 각도로 미사일 발사대 모양으로 치솟으려는 순간.
“여보. 마누라와 애인 말이야, 그 두 사람을 음식에 비한다면 뭐로 비하는 줄 당신은 알아?” 하고 얼른 아내의 말이 나오기 전 내가 먼저 말문을 막았다.
“뭔데?” 하고 아내는 약간 호기심이 동하는지 찌푸린 얼굴을 다시 펴면서 묻는다.
“그게 말이야, 그게.......” 하고 더듬더듬 뜸을 약간들이며 시간을 끄니
“뭐야? 사람이 말 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려? 김새게” 한다.
공연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또 무슨 변고가 내 오후인생에 예측 불가능한 막다른 골목으로 비참하게 쳐 박혀질지....... 불안하고 조심스럽다.
이제 와서 이왕 내 뱉은 것
‘자고로 사내 대장부는 늘 당당히 자기 말 하고 살아야 한다.’
라고 하시던 아버님의 준엄한 유지를 생각해서 용기를 냈다.
“여보, 마누라는 말이야 된장국이라면, 애인은 양념갈비야” 라고 한마디 내 뱉는 순간.
“뭐야? 마누라는 된장국!” 하며 양손으로 앞의 밥상을 번쩍 잡아들고서 던질 듯 폭발직전의 아내.
그리고 두 눈동자가 동시에 측정 불가능한 무한지역으로 일그러지며 험상궂게 확장을 한다.
갑자기 아침 밥상 앞 분위기에 검은 전운이 짙게 감돌며 주변이 캄캄하다.
와- 사람이 이래서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구나 하면서 이럴수록 정신은 차려야 했다.
“글쎄, 여보! 여보! 좀 진정해요, 내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 보고 말해요 제발 좀”
하고 아내의 성질이 궤도 이탈하려는 그 중심을 가까스로 잡고 축 안쪽으로 으르며 간과 쓸개가 빠지도록 달랬다.
오늘 이 시간 이후 내 인생항로가 정상적인 좌표로 잘 항해하게 되려는지? 전혀 미래 쪽 예측이 불가능했다.
“된장국은 말이야, 된장국. 아침에도 먹고, 점심때도 먹고, 그리고 저녁에도 먹잖아? 이렇게........ 하지만 전혀 물리지 않지? 물론 당신 솜씨가 남들보다 월등히 좋아 맛있게 잘 끓였기도 했지만”하면서 아내를 옆댕이로 슬쩍 한번 쳐다보았다.
“그래서?!!!”
아내는 내 입속에서 다음 어떤 말이 또 나올지를 찰나적으로 예의주시 하며 되묻는다.
“여보. 너무 흥분만 하지 말고, 내 말의 본질을 차근히 잘 갈파 해봐요” 하며 약간 분위기를 내려 앉히려했다.
하지만 아내는 더 흥분된 소리로
“그래, 집구석에서 매일 뼈 빠지게 죽으라, 살림살이만 하는 지 여편네는 하잘 것 없는 삭아빠진 된장국으로 표현하고, 뭐 애인 년은 맛있는 갈비로 응? 그것도 양념갈비? 지랄하고 있네......”
지금의 아내 기분을 본초자오선인 경도 표준점으로 잡아오기란 복권1등 당첨 확률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았다.
“나를 좀 봐, 며칠째 올라온 이 된장국 변함없는 그 맛이라 이렇게 편안하고도 맛있게 잘 떠먹고 있잖아”하고 얼른 된장국을 연거푸 몇 숟갈 떠먹었다.
“그런데 양념갈빈?” 하고 아내는 나의 정수리를 까부실 듯 날카롭게 되묻는다.
“말도 마, 그 양념갈비? 그것 진짜 귀찮은 거야.
당신 잘 한번 세세히 생각해봐. 양념에 신경 써야지, 익힐 불에 신경 써야지 그리고 탈까 봐 조심조심 뒤척이며 정성스레 구어야지, 귀찮지만 또 가위로 잘게 잘라 줘야지........ 이따금 탄 불판 갈아 달래야지........
그렇게 어렵고 조심스레 구웠지만 그 것을 말이야, 아침에 먹고, 점심 때 먹고, 또 저녁에 먹던 갈비 아깝다고 싸와서 그 이튿날 아침, 점심.......그리고 저녁......... 이렇게 계속 먹어봐?
처음 한 두 끼야 괜찮겠지만 며칠째 계속 갈비만 먹는다면 그 갈비가 입속으로 또 들어가겠어? 나 같으면 올라온 그 갈비밥상 이렇게 통째 날려버리고 말 거야, 양념갈비 좋아하시네........”
하며 조금 전 아내가 콱 던지려고 들었다 놓았다 하던 그 밥상을 이번엔 내가 날릴 듯이 번쩍 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.
“그럼 이 된장국은 여태껏 그렇게 먹었어도 당신은 안 물려?”하고 다소 누그러진 훈풍 같은 아내 물음에 나도 모르게 광속(光速)적 화답이 튀어나왔다.
“그럼, 그럼. 물리기는 왜 물려?.......이 맛좋은 된장국이 몇 십 년을 먹어도 맛만 좋은데........ 당신처럼....... 당신도 나처럼 이렇게 떠 먹어봐......... 내 말이 참말인지 아닌지 알게........”
무미건조(無味乾燥)하고도 다 짜라 빠져 이제 국물은 없고 뚝배기에 눌러 붙은 찌꺼기들만 죄 없는 숟갈이 박박 긁었다.
“와 과연 된장국은 된장국이야.”
아내를 힐금힐금 쳐다보며 웃음 지었다.
- 공처가로 살아남기 중에서 -
* 이글은 본인이 원 작가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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